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3개의 쿠데타'란 무엇일까?

이재명 대통령이 말하는 '3개의 쿠데타'란 무엇일까?

5·16 군사정변, 12·12 군사반란, 그리고 12·3 비상계엄까지 쉽게 이해하기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여러 연설에서 우리 현대사를 이야기하며 "세 번의 쿠데타"를 언급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5·16과 12·12는 알겠는데, 12·3은 왜 함께 이야기하는 걸까?"

라는 궁금증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은 각각 어떤 사건인지 쉽게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5·16 군사정변 (1961년)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군인들이 당시 정부를 무력으로 장악했습니다.

당시 군은

  • 국가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많은 역사학자들은

  • 헌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군이 정권을 장악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군사 쿠데타로 평가합니다.

이후 박정희 정부는 약 18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두 번째, 12·12 군사반란 (1979년)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전두환·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12월 12일 군 지휘권을 무력으로 장악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 5·18 민주화운동
  • 전두환 정권 출범

으로 이어졌습니다.

대법원은 이후 이 사건을 군사반란으로 판단했고, 관련자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세 번째, 12·3 비상계엄 (2024년)

2024년 12월 3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정부는 당시 국가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국회는 계엄 해제를 의결했고, 계엄은 단시간 내 해제되었습니다.

이후 이 조치의 헌법적 정당성과 적법성 여부를 둘러싸고 큰 논란이 이어졌으며, 정치권과 사회에서 다양한 평가가 제기되었습니다.


왜 이재명 대통령은 '세 번째 쿠데타'라고 말할까?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연설에서

  • 5·16 군사정변
  • 12·12 군사반란
  • 2024년 12·3 비상계엄

을 모두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위협한 사건이라는 취지에서 함께 언급하며 "세 번의 쿠데타"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 5·16은 현재 역사학계와 교과서에서 군사 쿠데타 또는 군사정변으로 널리 다뤄집니다.
  • 12·12는 법원 판결을 통해 군사반란으로 인정되었습니다.
  • 12·3 비상계엄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사회에서 평가가 엇갈렸으며,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쿠데타"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표현은 그의 정치적·헌법적 평가를 담은 것입니다.

즉, 세 사건은 모두 헌정질서와 관련된 중대한 사건이지만, 법적 평가와 정치적 표현은 구분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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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정리

사건발생 연도핵심 내용
5·16 군사정변1961년군이 정권을 장악
12·12 군사반란1979년신군부가 군 지휘권 장악, 법원에서 반란으로 판단
12·3 비상계엄2024년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국회의 해제 의결, 이후 큰 정치·헌법 논란


마무리

우리 현대사에서 군과 권력, 민주주의를 둘러싼 사건들은 지금도 중요한 논의의 대상입니다.

특히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3개의 쿠데타'는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자는 의미를 넘어, 헌법과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12·3 비상계엄을 '쿠데타'라고 부르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평가를 반영한 표현이라는 점도 함께 이해하면, 관련 논의를 보다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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